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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작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을을 제일 좋아해서(식욕의 계절~음~얌뮈~) 가을 소재로 글을 적었는데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키타상 츠무야 천년해로해줘~ !

 

 

다음 주장은 키타 선배라는 말이 돌더라.”

“흐음.”

그래? 아츠무가 대충 대꾸하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빨리 공을 올리라는 신호였지만 오사무는 움직이지 않았다. 쌍둥이 동생이 반응하지 않자 코트 쪽에 시선을 두고 있던 아츠무가 이내 그가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며 불쾌한 얼굴을 감추지 않았다. 굼뜬 채 무얼 하고 있냐는 싸늘한 눈빛에도 오사무는 한숨만 쉬었다. 주변엔 지지리도 관심 없는 새끼. 저 놈은 옛날부터 그랬다. 자신의 일 외에는 눈곱만큼의 관심도 여유도 없다. 타인에 눈을 돌릴 시간에 공 한 번 더 만질 생각만 하고 있다. 남이 무얼 곱씹던 말던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 똥고집이 여기까지 끌어올릴 수 있게 된 거겠지만…. 이걸 16년 가까이 받아내야 하는 같은 얼굴의 소유자는 괴롭단 말이지. 오사무는 이내 마주 편에서 “멍청아, 빨리 공 안 던져?!” 하며 신경질을 내는 아츠무의 재촉을 받고 나서야 겨우 그를 향해 배구공을 던졌다. 일정한 궤도로 올라오는 공 위로 아츠무가 양 손을 올려 코트 중앙 쪽으로 토스했다. 미리 스탭을 밟고 있던 오사무가 가뿐히 바닥을 도약해 몸을 던지듯 점프해 바라던 방향으로 올라온 공을 강하게 쳐냈다. 예상 이미지는 눈앞의 이타치야마의 블로킹 세명, 매치포인트. 힘으로 찍어누르는 듯한 스파이크는 공의 궤도가 비뚤어지지 않고 일직선으로 뻗어 라인 안으로 튕겨져 나갔다. 공이 터질 정도로 커다랗게 울리는 소리는 귀를 시원하게 뚫어 준다.

“….”

인정하기 싫지만 완벽한 토스였다. 통통통, 작게 튕기며 굴러가는 네트 너머의 공을 보던 오사무가 느릿하게 고개를 돌리면 마주 편에서 만족스럽게, 하지만 얄밉게 입 꼬리를 비틀어 올리는 아츠무가 있었다.

누가 봐도 ‘어떠냐, 내 실력.’라고 쓰여 있는 얼굴에 오사무의 눈썹이 비뚤어졌다.

“내가 ‘잘’ 때린 거야.”

“아니. 내가 ‘잘’ 올린 거지.”

토스나 스파이크, 하물며 리시브도 아닌 그저 신경질적으로 던지는 공들이 서로의 얼굴에 정통으로 얻어맞거나 스쳐갔다. 체육관이 온통 배구공들로 굴러다닐 때까지 한참을 공을 던지며 투닥이던 두 쌍둥이가 멈춘 건 막 회의를 마치고 들어온 감독이 아츠무의 공을 얻어맞고 난 뒤였다. 회의실까지 귀를 잡히고 끌려가 무릎을 꿇은 채 한참을 꾸중을 듣고 나서야 겨우 끝날 수 있었지만 오사무가 꺼낸 화제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키타 선배가 다음 주장이 된단 이야기 너희도 들었지?”

같은 화제를 되새김질 한 건 긴지마였다. 일학년들끼리 훈련을 마치고 어질러진 체육관을 정리하고 있었던 중이라 화제의 중심인 키타나 다른 2,3학년들은 자리에 없었다. 투덜거리며 네트 줄을 정리하던 아츠무와 크게 입을 벌려 하품을 하던 오사무도 저절로 화제를 꺼낸 긴지마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

“그거 확정된 거래?”

한 손에는 핸드폰을 쥐고 설렁설렁 공을 줍고 오던 스나가 물었다. 누가 봐도 건성인 태도에 긴지마가 그를 쏘아보며 눈살을 찌푸렸지만 정작 상대는 고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결국 옆에서 신발을 정돈하고 있던 코사쿠가 “정말이야?”라고 물어보고 나서야 긴지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화제를 이어나갔다.

“기정사실이라던데. 오오미미 선배한테 물어봤더니 이학년들 사이에서도 말 끝났나 봐.”

“이나리자키는 세대 교체가 빠르네.”

“아니, 올해만 그런 거 아니야?”

너도나도 할 거 없이 일학년들이 온데 모여 같은 화제로 떠들썩하다. 다들 남은 뒷정리를 하는 것보다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에 끼어들고픈 것도 있었겠지만 사실 새로운 캡틴에 관심이 가는 것도 이유에 뒷받침을 했다. 인터하이가 끝난 뒤여도 고교 배구팀에 들어온 지 일 년도 되지 않은 신입생들에게는 가뜩이나 선배들은 미지의 존재이기도 했고, 새로운 주장에 따라 팀의 색도 확연하게 달라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삼학년 주장은 포지션은 윙 스파이커로 수비에 뛰어난 라이트로 리베로와 함께 팀 방어 중축에 서있었다. 중심에 서있는 만큼 팀이 흔들릴 때 잡아주면서도 곧잘 다른이들과 장난을 치는 걸 좋아하는 쾌활한 성격의 선배였던지라 윗 터울을 어색해하는 일학년들도 곧잘 따르고는 했었다. 그런 선배가 인터하이 이후로 곧장 자리를 내려와 은퇴 소식을 알린 건 여러 의미로 충격이었다.

“은퇴 시합도 주장 일정에 맞춰서 당겨졌고…”

“어쩔 수 없지 않나? 그 선배 진학반이라며.”

이나리자키 배구부는 높은 실력에다 특히나 올해 인터하이에는 전국3위까지의 실적을 따내고 있다지만 팀 내의 모든 부원들이 같은 목표로 바라보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인터하이를 마치고 돌아온 주전들 대부분은 다음 경기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관해 의논부터 시작하고 있었지만 은퇴를 하는 다른 부원들을 포함한 주장들은 한결 흡족스러운 표정으로 각자의 자리를 내려놓았다. 그들은 그 자리에 모두 만족해 보였다. 물론 다른 이들이 이를 탓할 순 없었다. 제각각 올라가야 하는 계단이 다른 것뿐이었으니까.

“그래서 다음 주장으로 정해진 게 키타 선배라고…”

“아직 감독님으로부터 전해진 말은 없지만 뭐… 이학년들끼리도 말맞춰서 나온 거 보면 거의 확정 아닐까?”

“우리한테 의견을 물어볼 리도 없고.”

응, 응. 일학년들이 머리를 맞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만 키타 선배라…, 나 그 선배 잘 모르겠던데.”

“나도. 캡틴이랑 분위기가 정 반대잖아.”

쾌활하고 사교성 좋은 주장은 곧잘 일학년들과도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에 꼭 주전이 아니라도 모두가 가볍게 말을 털어놓을 정도로 주장은 대화하기 편한 상대였다. 하지만 그에 반해 키타 앞에 섰을 땐 저마다 온 몸에 돌이라도 된 양 모두가 딱딱하게 경직됐다. 날카롭게 뜬 그 눈과 마주칠 때면 저절로 몸이 움츠리게 되고, 필요 이상으로 말을 하지 않는 그였기에 입이라도 열게 되면 머릿속이 하얗게 되고는 했다. 이는 일학년들뿐만이 아니라 같은 학년인 이학년, 심지어는 선배인 삼학년들까지도 키타 앞에서는 허튼 짓을 하지 못했다.

“키타 선배는… 무섭지.”

긴지마가 중얼거렸다. 응, 무서워. 주변의 다른 일학년들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의견에 수긍했다.

주장이 바뀌면 팀의 분위기가 다르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주장과 다음 주장이 될 키타는 지금의 주장과 정 반대의 사람이라, 그 사람이 이끄는 팀의 색은 당연히 바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학년들은 팀의 색이나 방식이 바뀌는 것보다는 다음 주장이 될 키타에게 어떻게 하면 혼나지 않을까 라는 염려의 생각이 더욱 앞섰다.

“이 돼지새끼가!”

잠시 다른 일학년들이 키타를 떠올리며 머리를 싸매던 사이 그 의식을 깨트리듯 날카로운 목소리가 이들의 귀를 자극했다. 쾅! 소리와 함께 공이 터질 듯 내동댕이쳐지는 소리가 들렸다.

“네트 줄 잡아당기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야 귀 담아 처 들을래? 귀가 없냐? 아니면 그것까지 다 씹어 먹었냐 돼지야?!”
“말 좀 곱게 하라고 이 싸가지 없는 새끼야! 네가 애초에 제대로 했으면 엉키지도 않았을 거 아니야, 정리 어디 한두 번 해보냐? 지능 어디다 두고 살어? 아 그래서 낙제가 세 개나 되냐?”

“너도 낙제잖아 망할놈아!”
“난 두 개밖에 안되거든 미친놈아!”

그게 그거지 이 개새 진짜! 보다 못한 아츠무가 먼저 달려들었지만 주먹을 휘둘러 맞은 것도 아츠무가 먼저였다. 뺨이 시뻘겋게 됐지만 아랑곳 않고 아츠무도 오사무의 멱살을 잡고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정리하던 네트 줄이 서로의 발에 엉켜 붙어 주변이 엉망이 되기 시작했다. 이 xx, xxx! 온갖 비난이 담긴 말과 욕설과 함께 주먹질이 오간다. 아아, 아아아…! 일학년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유일하게 태연하게 지켜보던 스나만이 주머니에서 슬쩍 핸드폰을 꺼내다 카메라로 촬영하기 시작했다. 띠링, 찰칵. “아니, 찍지 마 스나!” 긴지마가 질겁한 채 소리쳤다.

“야 아츠무! 그만해!”

“오사무!”
“너희들은 왜 허구한 날 싸우냐…!!”

“누가 얘네 좀 말려봐!”

보다못한 일학년 몇몇이 두 사람을 말리기 위해 달려들어 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울상이 된 코사쿠가 애원하듯 외쳤다. “누가 키타 선배 좀 불러와…!!”

유일하게 엉켜든 무리에서 섞이지 않은 스나만이 촬영을 하며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난장판이군. 핸드폰 카메라 알림이 다시 띠링, 하고 울리면서 촬영이 끝났다. 이번엔 동영상에서 일반 촬영으로 화면을 바꾸던 스나가 중얼거렸다.

“이래서 그 사람이 주장으로 간택된 거 아니야…?”

 

 

 

싸악, 싹. 빗자루를 쓴다. 쓰윽, 쓱.

“야 츠무”

“뭐 사무”

“안쪽 틀 제대로 안 쓸었잖아.”

“아니 아까 쓸었…”

오사무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조금 전까지 잘 쓸어놓았던 자리 위로 또 수북이 쌓여 있었다. 아 씹. 순간적으로 입 밖으로 욕설을 토해내려다 말고 신속하게 목구멍 안쪽으로 넘겼다.

“제대로 해야지.”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저절로 몸이 기립 자세가 된다. 느슨하게 움직이고 있던 빗자루의 기둥을 잡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니면 도와줄까?”
“아뇨.”

“괜찮습니다.”

조금 전까지 싸우기에만 급급하던 쌍둥이가 호흡을 맞추며 대답했다. 이 사람이 합세했다간 정말로 고개조차 들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분명 여름도 다 지나서 서늘한 날씨인데도 등줄기로 땀이 쭉쭉 흘러내렸다.

결국 두 사람을 막은 건 다른 학년들과 회의를 하다말고 일학년에게 불려서 온 키타에 의해서였다. 여럿이 달려들었음에도 꿈쩍도 안 하던 두 사람은 키타의 한 마디에 꼼짝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고, 다른 이들이 아츠무들의 몸에 엉킨 네트를 푸는 동안 감독과 코치가 들어와 또 한바탕 소동이 났다. 결국 쌍둥이들은 마무리 청소가 다 끝난 뒤에도 체육관 근처의 낙엽을 다 쓸고 가야하는 벌을 받았다.

혼이 나는 거나 벌을 받는 거야 늘 일상 같은 거라 불만은 있어도 그러려니 했지만 두 쌍둥이들이 옴짝달싹도 못하고 얌전히 청소에만 집중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체육관 열쇠를 쥐고 계단에 앉아 있는 키타가 이유였다. 그는 두 사람이 딴 짓을 하지 않도록 직접 남아서 지켜보겠다며 감독에게 말을 전했고, 결국 두 사람과 함께 남았다. 둘은 선배인 키타를 하교시키기 위해서라도 빠르게 그리고 완벽하게 청소를 끝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낙엽은…’

싸악, 싹. 아츠무가 쥔 빗자루가 저마다 낙엽들을 한자리로 모았다. 은행과 단풍은 저마다 가지각색으로 새빨갛게 물들인 것도 있었고, 샛노란 것도 있었으며 아직 다 물들지 못해 주변에 초록색의 여물이 남아있는 것도 있었다.

‘왜 쓸어도 쓸어도…’

한 웅덩이로 모아두니 쓰레기처럼 보이던 낙엽들은 꽤 그림이 됐다.

‘끝, 이… 안 나냐고…!’

계속 떨어진다는 게 문제였지만.

본래의 괴팍한 심성으론 당장이라도 빗자루를 바닥에 내동댕이쳤어야 했지만 흔들리는 이성보다 본능이 더 빠르다고 반사적으로 빗자루를 쥔 힘이 더 거세진다. 잎들이 색을 발하는 가을이란 계절인 것도 있었지만 오늘이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불어 나뭇잎들이 후두둑 쏟아지는 이유도 있었다. 덕분에 쓸어도 쓸어도 끝이 안 나는 사태가 벌어졌다.

가뜩이나 지겨운 일이 끝이 보이지 않으니 더 막막해져 아츠무는 빗자루 턱 의로 손을 짚은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겹구나.”

“네, 네?!”

속이라도 꿰뚫은 듯 꺼낸 단 한마디의 말이 아츠무의 허점을 찔렀다. 하마터면 빗자루를 쥔 채로 삐끗해 엎어질 뻔한 아츠무는 겨우 중심을 잡고 얼떨떨한 얼굴로 제 옆에 다가온 키타를 바라보았다. 괜찮다고 말했것만 어느새 그의 선배의 손에는 다른 빗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낙엽이 계속 떨어져도 신경 쓰지 마. 내가 보고 있었으니까, 저기 앞문까지만 크게 흐트러진 부분만 쓸어두고 그만해도 돼.”

“어… 네.”

그리고 빗자루를 쓸기 시작하는 그를 보다 말고 아츠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오사무의 모습은커녕 머리카락 끝자락도 찾을 수 없었다. 안 봐도 뻔하지.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 나머지 다른 곳을 청소하고 오겠단 핑계로 꽁무니를 뺀 게 뻔했다. 아츠무는 이를 갈았다.

“당장이라도 빗자루를 내치고 싶겠지만 조금만 더 힘 좀 내.”

‘어떻게 안 거지…’

“평소에 오사무한테 신경질 내는 힘으로 가져다 쓸다보면 금방 끝날 테니까.”

‘…이거 혼나고 있는 거지.’

오사무가 경멸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거라던가, 잔뜩 화가 난 담임이 버럭 소리를 지르는 거라던가, 감독에게 벌을 받는 것 등등 온갖 것들을 다 합쳐도 이 사람의 말 한 마디와 비교할 것이 못 된다. 여태 자라오면서 들어온 것들을 비교해도 이 사람의 단 한마디의 말과는 감히 넘볼게 못됐다. 이상하게 그랬다. 다른 애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자신들을 막으려 할 때도 꼼짝도 않던 아츠무가 키타만 오면 늘 먼저 몸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이 때문인지 부원 대부분이 두 사람이 사고를 치기 시작하면 처음으로 부르는 상대가 감독도 아닌 키타가 되었다.

“반복적으로 쓸기만 하다 보면 지겹기도 하겠지만, 조급해 할 필요 없어. 제대로 하면 되니까.”

키타의 한 마디는 무겁다. 무겁다라는 말보다 정확히 말하면 날카롭다. 키타는 남들과 비교하면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라 아츠무들처럼 함부로 하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입밖으로 내는 말들이 허점을 찌를 때가 많았다. 아츠무뿐 아니라 다른 부원들도 꼼짝도 못했다.

“제대로, 틈틈이 부지런히 해오다 보면 저것 봐.”

키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으로 아츠무의 눈길도 따라 옮겨진다. 그가 가리킨 방향에는 조금 전까지 아츠무가 쓸어 모았던 낙엽더미가 있었다. 얼마나 쓸었는지 양이 꽤 됐다. 키타도 같은 생각을 한 건지 “고구마 구워도 되겠네.”라며 중얼거렸다.

“티끌만큼이라고 해도 해온 만큼의 몫이 네게 돌아올 거야.”

“….”

“그러니까 게으름 피우지 말고 열심히 해.”

그래봤자 겨우 낙엽 쓸기. 하지만 키타가 말하는 건 감독이 준 벌이나 낙엽을 쓰는 것만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하지만 이건… 배구가 아니잖아요?”

괜히 입밖으로는 퉁명스러운 말이 나온다. 뭐든지 생각하는 대로 내뱉는 것도 아츠무의 좋지 않은 버릇 중 하나였지만 위아래 상관없이 꺼내진다는 것도 문제였다.

“그건 그렇지. 이건 너희 둘이 싸워서 감독님한테 벌로 청소하는 거잖아.”

아. 그치만 이 사람이 한 수 위다. 반박하려던 것과 무색하게 아츠무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그런 아츠무를 두고 가장자리의 낙엽을 쓸어 모아오던 키타가 다시 입술을 떼어냈다.

“하지만 배구랑 크게 다른 것도 아냐. 반복하다보면 돌아오는 게 있는 건 같아.”

“…되풀이하는 걸로는 성장할 수 없잖아요.”

“그렇게 생각해?”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발전은 없어요, 재미도 없고요.”

“아츠무 넌 재미로만 배구를 하는구나.”

말문이 막힌 것뿐만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숨까지 턱 멎은 기분이 들었다. 태연하게 자신을 응시하는 눈빛에는 감정적인 아츠무와는 달리 속을 알 수가 없어 더욱 혼란스러웠다.

“…아, 아니 그런 건 아니…!”
“알아. 농담이야.”

이 사람 농담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가. 농담으로 꺼내기에는 여전히 무감정해보이는 얼굴이라던가 특히나 꺼낸 당사자가 남달랐다.

완전히 휘둘린 기분이다. 정리하자면 그렇다. 이제 키타는 계단 근처의 마지막 낙엽을 쓸고 있었고, 아츠무도 낙엽더미가 바람에 날아가기 전에 봉투에 담아다 안쪽까지 꾹꾹 발로 밟아 누르고 있었다. 꽉 채울 만큼 가득해진 낙엽더미를 보고 새로운 봉투를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다시 나뭇잎들을 쓸고 온 키타가 “아츠무.”하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너무 답답하게 생각하지 마.”

그가 답답해하는 것처럼 보이기라도 했던 걸까. 의도를 읽지 못하고 얼굴에 물음표를 그리는 아츠무에게 “네가 말한 것도 맞으니까.”라며 키타가 덧붙였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평정심을 잃지 말고 하고 있는 일에 전념하면 언젠가 득이 온다는 이야기였어. 변화는 좋은 쪽이던 나쁜 쪽이던 꼭 오기 마련이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아츠무 네 말대로 발전할 수도 있는 거야.”

‘…키타 선배 오늘은 말이 많으시네.’

비꼬아서 말하는 게 아닌 정말로 신기해서 든 생각이었다. 필요한 게 아닌 이상 말을 아끼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흥분한 미야 쌍둥이를 자제시키기 위해서라도, 실수를 범한 부원들을 다잡기 위해서라도 한두 마디는 건네기는 했지만 그 이상으로 덧붙이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아츠무가 든 생각은 오늘따라 그가 달라 보인다는 것이었다. 아츠무는 잠시 그 이유를 찾았다. 그의 속내를 알 수 있을 리 만무한데도 자기 머릿속을 파헤쳐 원인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든 생각은,

“…선배가 주장이 되는 것처럼요?”

실수했다. 라고 생각한 건 아츠무의 말에 놀란 건지 키타의 두 눈이 커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잘못 말했다고 생각한 한편으론 어쩐지 마음 깊숙이 작은 구석에선 남몰래 그의 허점을 찌른 기분이 되어 묘한 쾌감을 느꼈다.

“그 얘기 누구한테서 들었어?”
“저희끼리 얘기하다가 나왔어요.”

“…아직 확정된 건 아니야.”

‘아직.’ 아예 틀린 건 아니란 소리였다. 하지만 확신하지 않는 말투에 왠지 모르게 초조함을 느꼈다.

“말이 나왔다는 건 하게 될 거란 얘기잖아요. 하실 거죠?”

“내가 했으면 하는 말처럼 들리네.”

먼저 눈을 맞춘 건 키타였다. 다만 조금 전처럼 허점이 찔려 숨이 막힌다거나의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저 그런 말을 한 키타의 말이 되려 의문으로 다가왔다.

“그거야…”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라.

당신 말고 또 누가 있어…?

 

 

다음 주장은 키타 선배라는 말이 돌더라. 쌍둥이 동생의 말에 아츠무는 태연스럽게 또는 무심하게 대꾸했다. 키타 선배가 다음 주장이 된단 이야기 너희도 들었지? 긴지마가 꺼낸 화제에 모두가 시선이 돌아가 아츠무도 자연스럽게 따라갔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금방 오사무와 다투어 머릿속에 까맣게 잊어버렸다.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너무 당연한 거라.

이 사람 외에 또 누가 있다고…

단순히 자신들을 쉽게 제압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이 사람을 주장 후보로 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비록 키타는 올해 인터하이 때 주전은커녕 벤치에도 들어가지 못했지만 이나리자키의 배구부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이었다. 그는 연습시합이나 훈련에도 단 한 번도 게으름을 피운 적도 없었고, 꼼꼼하고 세심한 사람에다 눈썰미까지 좋아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흐름을 곧잘 읽어냈다. 지금의 주장이 포용심 있게 부원들을 이끌어 나간다면 이 사람은 한 명 한 명 두루두루 다른이들을 살펴보며 무너질 뻔한 부분을 안정감 있게 채워주는 역할이었다.

지금의 주장과는 정 반대인 사람. 그래서 뭐 어쩌라고. 변화는 언젠가 찾아오기 마련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건 자기자신의 몫이다. 아츠무는 자신이 있었다. 적어도 눈앞에 있는 사람이 제게 해가 될 리가 없었다. 그러니까,

 

“그거야 저는 익숙해질 생각이니까요.”

“….”

키타는 잠시 고개를 돌렸다. 그 탓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돌린 고개 너머로 흡, 하고 숨을 참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어 설마 이 사람 웃고 있나?

“선…”

“아니, 미안.”

키타가 다시 정방향으로 고개를 되돌렸다. 웃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전과 별 다를 바 없이 굳은 표정이었다. 어쩐지 힘주어 말한 것 치곤 아무 반응이 없어서 어깨에 힘이 풀렸다.

“갑자기 무슨 생뚱맞은 소리를 한다 싶어서.”

“아…”

그러고 보니 제 생각에 빠져 있긴 했다. 앞뒤와 전혀 관련 없는 말이었던 걸 깨달은 아츠무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키타는 그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갑자기 손을 뻗었다. 눈앞에 거리가 좁혀진 그와 시야를 가릴 듯 다가오는 손에 깜짝 놀란 아츠무가 흠칫 떨었다.

“아츠무, 너 오늘은 조금 이상한 것 같아.”

“네, 네?!”
“아니. 자꾸 맞는 말만 하길래…”

‘평소에는 틀린 말만 한다고…?!’

“저 선배…”

“잠깐만.”

신장 차이 상 아츠무가 그보다 한 뼘은 더 크기에 거리를 좁힌 키타가 자연스럽게 발끝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오사무들이라면 모를까 여태 이 사람과 이렇게까지 가까워진 적이 없었던 아츠무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오늘만 몇 번을 긴장하는 건지 모르겠다. 딱딱하게 굳은 아츠무를 뒤로하고 손을 뻗은 키타는 그의 노란 머리칼 위에 얹어 있던 빨간색 낙엽을 떼어냈다.

“계속 붙이고 있었는데 모르길래.”

“…”

“이거 봐.”

얼마나 새빨갛던지 낙엽과 아츠무의 색이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후. 그 얼굴을 올려다보던 키타가 조용히 숨을 토해냈다. 곧 뒤돌아 선 키타의 시야로 치웠던 계단 주변에 어느새 쌓인 낙엽들을 발견했다. 아무래도 오늘 내로 청소를 끝내려면 낙엽들이 다 떨어지기를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빗자루를 쥔 키타의 손에 힘이 풀렸다.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가을의 나뭇잎들은 저마다 제각기 다른 색으로 물든다. 개화를 마친 이들이 차디 찬 시기를 견디고 적응해나가 또다른 새싹을 피워내게끔 하기 위해서다. 이번에는 그는 턱을 올리고 높아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길게만 느껴졌던 낮도 점점 더 짧아져가고 어느새 그늘빛이 들고 있었다. 노을은 나무들을 덮은 형형색색들의 낙엽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내가 다음 주장이 될 거란 확정은 없지만…”

“네, 네?”

“만약 하게 된다면 내가 맡은 몫은 열심히 해둬야지. 지금의 캡틴을 위해서라도.”

올해의 인터하이를 3위까지 이끌어 낸 그는 정말 열심히 했다. 자기가 맡은 바를 늘 최선을 다했고, 이탈하는 부원들이 없게끔 한 명 한 명씩 잡아다 이끌었다. 호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전국대회에 열망을 일으켰던 눈빛은 더는 볼 수 없다는 게 아쉽지만. 온화하게 웃는 얼굴에는 충족감과 만족이 들어 있었다. 신스케, 너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모두가 모여 그의 은퇴에 관해 이야기를 논하고 있을 때 문득 남자가 키타에게 꺼냈던 말이었다. 남자는 마치 자신의 다음이 키타인 게 당연한 것처럼 굴었다. 그리고 그에게 부탁한다고 덧붙여 말했다. 할 수 있어, 나도 해봤으니까. 만족감에 물든 눈동자는 더는 같은 열정은 없었지만 키타는 그 눈이야말로 긴 시간을 들이고 완성해 낸 성체라고 생각했다. 색이 타서 바래질 때까지 열정을 태운 사람은 이제 뭉쳐 놓았던 낙엽들을 떨어트리고 긴 휴식기를 가진 다음, 새로운 새싹을 틔워낼 것이다.

키타는 조금 전 아츠무의 머리카락에서 떼어 냈던 빨간색 낙엽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 이렇게 되겠지.

“다음에 주장이 될 사람을 위해서라도.”

“….”

“다음 주부터 예선인 거 알지? 너도 오사무도 정신 바짝 차려둬. 앞으로 더 바쁠 거야.”

“…알고있,”

“알고있습니다.”

어디에서 튀어나온 건지 오사무가 냉큼 두 사람 사이에 서서 대답을 했다. 타이밍 더럽게 못 맞추지. 아츠무가 날을 세우며 그를 노려보았지만 오사무는 태연스럽게 혀만 내밀며 약올렸다. 당장이라도 부딪칠 것처럼 굴던 두 사람 사이로 키타가 두 후배의 등을 밀어냈다.

“알고 있으면 빨리 청소나 끝내. 하루종일 할 거야?”

“아뇨…”

“죄송합니다….”

 

 

“그럼 키타 선배가 주장이 되는 거 맞죠?”

“감독님들이 의논하고 나서 결정 되겠지.”

“이제 캡틴이 되는 거겠네요.”

“그러니까 아닐 수도 있다니까.”

“캡틴…”

아츠무는 자기도 모르게 그 호칭을 중얼거렸다. 어울릴 듯 하면서도 어울리지 않는 호칭이 어쩐지 낯간지럽게 느껴졌다. 개미만한 목소리로 중얼거렸것만 상대에게도 들린 모양이었는지 키타가 아츠무를 응시하며 말했다.

“그리고 이름으로 부르는 게 더 좋아.”

“…어, 네?… 네?!”

이, 이름?! 자기도 모르게 낙엽이 든 봉투를 떨어트렸다. 오사무가 뭐하는 거냐며 투덜거렸지만 아츠무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

이, 이름… 이름으로 부르라고…

그래도 되는 거야? 긴장으로 마른 입술을 겨우 떼어내며 “그럼…” 하고 달싹였다.

“시, 신스,”

“은퇴라곤 하셨지만 아직 정식으로 은퇴하신 것도 아니니까 주장이 섭섭해 할걸.”

“어…”

“그러니까 평소처럼 이름으로 불러.”

아. 그러니까

그쪽….

누가 봐도 실망으로 물든 얼굴로 힘없이 “네…” 하고 중얼거리는 아츠무를 보며 오사무가 혀를 내둘렀다. 어휴 등신….

 

 

 

 

 

 

싸악, 싹. 빗자루를 쓴다. 쓰윽, 쓱.

“야 츠무”

“뭐 사무”

“안쪽 틀 제대로 안 쓸었잖아.”

“아니 아까 쓸었…”

아!!!!!! 아츠무가 신경질을 내며 빗자루를 내동댕이쳤다.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어야 하냐고!!!” 결국 화가 넘치고 쌓여 터져버렸다. 아니, 애초에 아츠무의 배구 외의 한계는 얼마 가지 못한다. 어휴 저 싸가지. 오사무가 쯧쯧 혀를 차며 옆에서 남은 낙엽을 쓸었다.

“츠무 넌 어떻게 그 나이 먹고 변한 게 없냐?”

“입 다물어, 자기도 똑같은 주제에!”

“난 너랑 다르게 얌전하잖아.”

“야. 너 나랑 쌍둥이거든?”

“그래서 창피해.”

“저걸 그냥 진짜”

조금 전까지 싸우느라 바빴던 두 사람이 또 달려들기 직전이다. 이젠 팔까지 걷기 시작하는 두 쌍둥이들 사이에서 한숨소리가 들렸다.

“입 놀릴 시간 있으면 둘다 빨리 끝내는 게 어때.”

일학년들은 이미 끝나고 하교했어. 키타의 등장에 오사무는 얌전히 빗자루를 쓸기 시작했고 아츠무는 걷었던 소매를 풀어두고 슬쩍 내동댕이쳤던 빗자루를 주워들었다.

“이제 체육관에서 굴러다니면서 싸우는 건 그만하는 게 어떨까.”

죄송합니다. 두 쌍둥이가 동시에 사과했다.

“삼학년 교실에서까지 소문이 자자해. 이제는 반 아이들이 너희 둘이 싸운다고 나한테 알려주더라고.”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 더 두 형제가 복창했다.

“알면 얼른 끝내자.”

키타는 빈 체육관을 마지막으로 살펴 본 뒤에 열쇠로 문을 잠그고 나왔다. 얌전히 낙엽을 쓸어 모으던 아츠무가 체육관에서 막 나온 그를 발견하고 고개를 돌렸다.

“선배, 가시게요?”

“아니. 가기 전에 감독님한테 들렸다 오려고…”

“다시 오실 거죠?”

“응. 너희 청소 끝낸 것도 봐야하니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키타는 두 사람을 감시하는 역할이었다. 삼학년인데다 주장까지 맡아 할 일이 바쁠 텐데도 동시에 쌍둥이의 일까지 조율하고 있으니 폐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아직 남아있다는 게 작은 기쁨이었다.

“그때까지 다 끝내놓을 테니까 같이 버스 타고 돌아가요!”

“그때까지 다 끝낼 순 있겠냐?”

“입 다물어 사무. 네? 같이 가요 키타 씨!”

선배란 호칭을 벗어던지고 굳이 ‘씨’ 라는 걸 강조해 불렀다. 아츠무의 작은 고집이기도 했다. 키타는 “다 끝낼 수 있으면 그러자.” 라며 그가 만족할 수 있는 대답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등돌린 작은 몸이 자신이 있는 방향으로 돌아갈 리 없었을 텐데도 아츠무는 그 모습이 시야에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한참을 버려진 개마냥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오사무는 혀를 끌끌 찼다. 저런 놈이 선배가 올 때까지 다 끝낼 수나 있을련지 모르겠다. 아츠무야 그와 함께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겠지만 오사무는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제 형제를 도와줄 마음이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놀린다면 놀리고, 방해한다면 모를까. 자신이 먼저 일을 마치고 그와 함께 돌아가려고 한다면 또 얼마나 성을 낼지 떠올려보자니 그 점은 흥미로웠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빗자루를 쓰는 속도가 빨라졌다. 하지만 이내 문득 스치는 생각에 분주히 움직이던 손이 멈춘다.

“그러고 보니 키타 선배 요즘 유난히 감독님 찾는 일 많지 않아?”

“어? 그야 합숙 일정도 그렇고 바쁘시잖아. 인터하이도 끝났으니 준비할 게 많겠지.”

“아니, 그것보다는…”

오사무가 인상을 찌푸리며 뒷말을 흐렸다. 애매하게 말을 끊는 건 되려 아츠무를 자극했다. 그도 똑같은 얼굴로 눈살을 구겼다.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아니. 저번에 긴지마가 꺼낸 말이 신경 쓰여서.”

“그러니까 뭐냐고.”

“인터하이도 끝났잖아. 작년처럼 키타 선배도 인터하이를 끝으로 주장 일 그만두는 거 아니냐고 하길래. 요즘 삼학년 회의도 많아졌으니까 그거 때문인지…”

아츠무는 다시 한 번 더 빗자루를 내동댕이쳤다. 말하는 게 아니었다! 데구르르 굴러가는 빗자루를 거들떠도 보지 않은 채 키타가 사라졌던 방향으로 뛰어가는 아츠무를 보며 오사무는 욕을 삼켰다. 이 개새, 이 많은 걸 누가 치우라고!!!!

 

 

예상보다 시간이 늦어졌다. 약속한 회의는 삼십분이었는데 벌써 삼십 이 분이었고, 키타는 시간을 맞추지 못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아- 아니죠?”

모이기로 한 장소가 바로 코앞인데 키타는 고지를 눈앞에 두고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어렴풋이 더 늦어질 거라고 예상했다. 자신의 팔을 붙잡고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마냥 헐떡이는 짐승을 떨쳐 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라고 말해요!”

“아니야.”

“제- 제가 뭘- 헉, 말할 줄 알고요!”

네가 아니라고 말하라며…. 키타가 한숨을 내쉬었다. 땀으로 젖은 아츠무의 표정이 더 일그러졌다. 훤칠한 얼굴이 엉망이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니 냉정히 뒤돌 수가 없었다.

하라는 낙엽쓸기 청소는 제대로 끝낸 건지 저 멀리서 전력질주로 달려오던 아츠무가 갑자기 키타의 양 팔을 붙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그 탓에 손에 들고 있던 체육관 열쇠나 회의자료도 우수수 바닥에 떨어졌다. 얼른 주워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팔을 감싼 손이 억세서 그럴 여유도 없었다. 그리고 악역. 전국 탑 세터에 드는 남자의 힘을 얕보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다.

“아츠무…”

“그러니까, 전-”

“진정해.”

하지만 이쪽도 질 생각은 없어서. 키타는 양 팔이 붙잡힌 대신 멀쩡한 발로 있는 힘껏 아츠무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악! 소리를 내며 무너지는 아츠무 앞으로 몸을 좁히고 그의 코를 있는 힘껏 꼬집었다. 제 팔을 아프게 한 일종의 벌인 셈이다.

“아으극,”

“진정하라니까. 아까부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러니까, 키타 씨가…”

“내가 뭘?”

“은퇴…”

“은퇴?”

“…한다고… 사무가…”

키타는 대답 대신 아츠무의 코를 쥔 손에 힘을 들였다. 아그악, 악! 아파요! 원하면 언제든 뿌리칠 수 있을 것을 바보같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아츠무가 낑낑거렸다.

“내일 시합 일정도 있는데 은퇴는 무슨…”

“그, 그럼 안하는… 아, 아 진짜 아파요! 악!”

“정신도 없이 달려와서는… 이런 것까지 달고 오고…”

키타는 버둥거리는 아츠무의 코를 잡았던 손을 떼어내고 이번엔 그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아츠무는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고 키타는 허리를 낮추고 있었기에 그를 올려다보면서 손을 뻗지 않아도 되었다. 아츠무의 머리를 털어내며 떼어낸 건 붉게 물든 낙엽이었다. 한참을 달려와 헐떡인데다 키타에게 코가 잡혀 숨이 막혀있던 아츠무의 얼굴색과 똑 닮았다.

“너는 정말로 변한 게 없구나.”

“…정말 안 하는 거죠?”

“변함 없이는 재미도 없다면서 넌 여전히 재밌어.”

재밌다는 말 치곤 재밌어 하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다. 괜히 약이 올라 아츠무가 소리쳤다.

“아 키타 씨!”

“안 한다니까.”

키타는 바닥에 떨어진 서류와 열쇠를 줍기 시작했다. 그제야 아츠무는 조금 전까지 흥분했던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동시에 수치감이 들었다. 사무 망할 자식, 이상한 얘기해서 이 사단이 났잖아. 어쩌지도 못하고 머뭇거리다 결국 그 옆에서 함께 서류를 주웠다. 키타 말대로 정말 은퇴를 하는 것은 아닌지 서류는 다음 시합의 일정과 합숙 내용이 적혀 있었다. 조금 전까지 흥분한 자신이 민망해질 정도다.

하지만 이 사람 입에서 직접 듣지 않는 이상 믿을 수 없다. 그만큼 불안했다.

“…봄고, 같이 가요.”

“….”

아츠무는 서류를 주워들면서 시선을 바닥에 떨궜다. 지금은 키타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정확히는 제 얼굴을 그에게 보여줄 수가 없었다. 초라하고 한심하게 보일 게 뻔했기 때문이다.

“저 아직… 당신이랑 배구하는 거 안 익숙하니까요…”

“그래?”

“네. 더 해봐야 알 것 같아요. 그러니까 봄고 같이 가요.”

바닥에 짚은 두 사람의 손의 위치는 가까웠다. 잡아버리면 무슨 생각을 할까, 물론 잡을 자신은 없었다. 애타게 꺼낸 말과는 다르게 키타의 대답은 없었다.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초조감이 수치감을 앞섰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자니 가까운 곳에 자신을 들여다보는 키타가 있었다. 이 거리감이 낯설지 않다고 느껴지면서도 울렁거리는 마음은 누를 수가 없었다.

그래도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있다.

“저희 아직… 우승 안 했잖아요….”

“….”

키타는 아츠무가 건넨 남은 서류를 받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쭈뼛거리는 아츠무를 향해 키타가 빨리 돌아가서 청소를 마치라는 충고를 건넨다. 결국 대답도 듣지 못한 채 돌아선 아츠무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후. 그 뒷모습을 눈에 담은 키타의 입 꼬리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아츠무.

 

그가 부른다.

고개를 돌렸다.

키타가 웃고 있었다.

 

너는 내가 지금으로 만족한 사람처럼 보여?

 

성과를 내야 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키타에게 세 번째이자 첫 번째, 그리고 마지막 기회였다. 그의 손안에 든 낙엽은 분명 빨갛게 익어 어여쁜 색을 띄우고 있었지만 아쉽게도 키타의 색은 아직 겨우 새싹이 마저 튼 초록빛에 불과해서, 그에겐 갈 길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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