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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배달합니다
럼 (@Rum_jul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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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합작 참여에 설렜습니다. 사정이 있어 더 좋은 글 싣지 못해 아쉽지만 모두 아츠키타 하세요♡
딩동-
“계십니까?”
무더운 여름이 가고 팔이 긴 소매의 옷을 꺼내야 할 날씨가 되었다. 슬금슬금 다가온 서늘함은 기분 좋은 쾌적함을 준다. 말은 안 했어도 추위를 많이 타는 키타였지만 여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그 간절기의 청량함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키타에게 요즘은 더없이 만족스러운 날씨였다.
딩동-
“계십니까?”
하지만 요즘 이상한 사람이 눈에 밟힌다. 정해진 일과를 반복하고 그것을 완수함으로써 삶의 만족을 얻는 키타는 그 사람 때문에 온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우체국 사람들 말로는 유명한 국가대표 선수라는데 한 달 정도 전에 이 동네로 이사를 왔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게 약 일주일 전, 키타는 잠시간 궁금증을 가지면서도 당일치의 우편물을 챙기며 금방 머릿속을 비워냈다. 오늘도 할 일을 해야 했다.
“자, 잠시만요!”
문 앞에서 서성이는 게 다 들리는데 매일 이렇게 여러 번을 불러야만 다급하게 문을 열어준다. 튀어나오듯 나온 남자는 칠흑같이 검은 머리의 잘생기고 체격 좋은, 누가 봐도 운동선수라고 할 만한 사람이었다. 원래 쑥스러움이 많은 사람인지 눈도 잘 못 마주치지만 한 뼘보다 조금 적게나마 차이 나는 키 때문에 얼굴이 잘 보이긴 했다. 뭔가 익숙한 기분이 들었지만 알 리가 없었다. 키타는 첫 만남부터 조금 이상했던 이 남자가 살짝 궁금하긴 했지만 본인과 관계없는 사람이니 인터넷으로 검색조차 해보지 않았다. 어디였더라. 브라질에서 얼마 전에 올림픽이 끝났으니 잠시 쉬기라도 하러 왔나.
“오늘도 우편물이 많으시네요.”
“아…, 하하. 그러게요. 뭐시 이리 많노.”
“그럼 안녕히 계세요.”
매일같이 이 집으로 오는 여러 개의 우편물 사이에는 꼭 하트가 많이도 그려져 있는 편지가 있었다. 팬레터 정도라고 생각한 키타는 오늘도 마지막 배달지인 이곳에서 바로 퇴근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
욕실에서 따끈한 저녁을 보내고 있던 키타는 문득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장면에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를 푸는 느낌이랄까. 날씨가 많이 추워지긴 했는지 벌써 목욕물이 식어가고 있었다. 물속에 머리끝까지 푹 빠졌다 나온 키타는 다시 생각에 빠졌다.
‘계십니까?’
분명 첫 만남에서 그의 표정은 당혹감이었다. 우편물을 꺼내느라 조금 늦게 고개를 들었을 때 스쳐지나가긴 했지만, 분명 그랬다. 왜 그랬을까. 그리고 얼마 전 꿈에서는 자신이 할 일을 끝낸 뒤 돌아섰을 때 슬픈 얼굴을 한 그가 보였다. 왜 그랬을까…. 자신의 꿈에 그 사람이 나올 만큼 가까운 사이도 아닌데. 키타는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하트편지. 왜인지 모르게 자꾸 생각이 났다.
-
딩동-
“계십니,”
“안녕하십니까!”
어쩐 일인지 초인종을 누르자마자 튀어나온 남자는 평소와 다르게 밝아보였다. 다크서클이 푹 패여있는 눈가는 여전했지만 말이다. 키타는 오늘도 눈에 띄는 하트편지와 함께 여러 장의 우편물을 건넸다.
“…키타상.”
“네?”
명찰이 있으니까 이름이야 알겠거니 했다. 그런데 저 표정은 무엇인지. 당최 알 수가 없는 사람이다. 사람을 불러놓고 왜 저렇게….
“아입니다. …옷 따뜻하게 잘 챙겨 입고 댕기세요.”
키타는 저 표정의 의미가 알고 싶었지만 질문을 할 수 없었다.
“네, 감사합니다.”
머릿속에서 그 얼굴을 지우지 못한 채 몸을 돌렸다. 감사인사와 함께 안녕히 계시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
오늘은 내일 전달해야 할 우편물을 미리 받아서 퇴근했다. 오전에 할머니와 함께 병원을 가야 해서 일과 전에 우체국을 들를 수 없기 때문이었다.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결국 궁금증을 떨치지 못한 키타는 오랜만에 노트북을 켰다. 유명한 사람이라고 했지. ‘미야 아츠무’라는 이름을 검색하며 결과들이 뜨는 동안 마음속으로 한 번 더 되뇌었다. 미야 아츠무….
“…이게 뭐고.”
수없이 뜨는 영상과 사진들 속의 남자는 화려한 금발이었다. 어쩐지 너무 인위적으로 까만색이다 했더니 금발에 검은색을 입힌 거였다. 물이 조금 빠지면 예쁜 색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클릭한 영상은 가장 많은 조회수의 경기 영상이었다. 유명하다더니 이유가 있었다. 무슨 운동을 하는지도 몰랐는데 배구였다니. 고등학교 배구부 출신인 자신이 이런 선수를 왜 모르고 있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실력 있는 사람이었다. 맞아, 그때도 이렇게 올라운더인 후배가 있었던 것 같다. 서브도 스파이크도 세트업도 훌륭한…, 누구였더라. 그리운 기분이 들었다.
한번 틀기 시작한 영상은 자동재생으로 다양하게 나왔다. 지루할 틈 없이 다양한 표정의 그가 어색했다. 내가 갈 때는 오늘 웃은 것 말고는 다 어두웠는데.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다음으로 재생될 영상의 제목을 확인했다.
[미야 아츠무 선수, 열애 중?!]
뭐야, 연인이 있었던가. 그런데 왜 이런 시골에서 혼자 사는 거지? 키타는 끊임없이 떠오르는 물음들을 누르며 영상을 눌렀다. 키타는 시작하자마자 뜨는 화면을 보고 좁혔던 눈꺼풀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하트편지.
‘이거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준 겁니다!’
매일 그에게 전하던 그 편지가 연인과의 소통수단이었다니. 요즘 같은 시대에 아날로그 방식의 그게 귀엽기도 하고 잘은 모르겠지만 왠지 그 사람답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일까. 짧긴 해도 한 달 정도를 매일 봐서 그런지 내적친밀감이라도 생긴 걸까. 하지만 키타의 궁금증은 얼마 가지 못했다.
‘키타상! 이거 제 승리요정!’
소리를 줄여둔 스피커에서 아스라이 흘러나오는 그의 목소리는 왠지 모르게 키타의 마음을 죄여왔다. 누가 자신의 뒤통수에 망치라도 갖다 박은 것 같았다. 반년도 더 된 영상인데…. 설마, 나를 말한 게 아니겠지. 할머니가 깨실까 싶어 줄여둔 것이 무색하게도 키타는 저도 모르게 음량을 높이고 있었다.
‘미야 아츠무 선수! 키타상이라면 고등학교 시절 함께 뛰었던 배구부 선배를 말하는 건가요?’
‘아하하! 이제 말 안 해도 다 안다 아입니까!’
그의 지인 중에 저와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이 있던가. 흔한 이름은 아닌데. 키타는 뇌 안에서 구름이 둥둥 떠다니는 묘한 기분이었다. 잔잔한 바다에 미야 아츠무가 뛰어들었다.
‘아츠무 선수의 선배 사랑은 유명하죠! 그럼 존경하는 선배에게 한 말씀!’
익살스러운 웃음으로 리포터와 얘기를 나누던 그는 잘생긴 입술 끝을 올리며 카메라를 응시했다. 조그마한 화면을 뚫고 아츠무와 눈이 마주쳤다.
‘사랑합니다. 키타상.’
선후배 간의 우정이 부럽다며 호들갑을 떠는 리포터를 뒤로하며 화면 속의 아츠무는 카메라를 계속 바라봤다. 키타를 바라봤다. 순간 키타는 볼을 타고 흐르는 무언가를 느끼고 닦아내었다. 전혀 눈물이 날 만한 상황이 아닌데도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동시에 둥둥 떠다니는 구름들이 가고 머릿속이 맑게 개었다.
이건 우정 따위의 알량한 무언가가 아니다. 그런…, 그런 쉽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츠무.”
미야 아츠무, 하트편지, 옷 따뜻하게 잘 챙겨 입고….
‘날도 추븐데 뭐 하러 나와 있습니까.’
그에게서 나에게로 옮겨지던 모자, 목도리, 장갑.
‘추위도 많이 타믄서…. 내 곧 도착한다고 들어가 있으라 했잖아요.’
‘니도 춥다이가. 다시 갖고 가라.’
조금만 쌀쌀해져도 내 생각을 먼저 하던 사람.
“아츠무.”
병원. 맞다. 내 얼마 전까지 병원에 있었제. 키타는 놀랍게도 최근의 일을 잊고 있었던 것이 믿기지 않았다. 병실 밖에서 다 큰 성인 남자가 엉엉 울고 있기에 살짝 봤던 기억이 난다. 금발의 남자였다.
“아츠무….”
키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평소와 다른 자신이 이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생각을 하기도 전에 움직인 몸은 어느새 우편물을 담는 가방을 뒤적이고 있었다. 이내 손에 잡힌 하트가 덕지덕지 그려진 편지봉투를 보는 순간 키타는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흑, 아츠, 무.”
[보내는 이 : 미야 아츠무]
[받는 이 : 미야 아츠무]
왜 이걸 놓치고 있었을까. 조금만 더 유심히 볼걸. 조금만 더 빨리 찾아볼걸. 키타는 이제야 그 표정의 의미를 알았다. 툭 치면 무너질 것 같은 그런 얼굴이었다. 처음 하트편지가 나온 게 첫 만남 이후 며칠 정도 흘렀을 때였다. 우편물을 꺼내려 고개를 숙일 때 아츠무는 우편물이 아닌 저를 쳐다봤었다. 아니, 그 때뿐만이 아니었다. 할 일을 끝내고 몸을 돌려나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의 시선이란 그 사람의 감정을 갖고 뻗어나가니까.
투둑-
편지봉투를 뜯었다. 그렇게 제 정수리를 쳐다보고서는 다 꺼내서 건넬 때는 눈도 못 마주치던. 그 속에 하트편지가 그대로 들어있는 것을 보고 나면 미세하게 처지던 눈과 입매도 다 떠올랐다. 길을 걷다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니 졸졸 쫓아오던 강아지를 발견했을 때의 기분이다.
- 키타상에게.
자신의 안부를 묻는 말로 시작하는 편지를 읽고 키타는 무너트렸던 몸을 일으켰다.
- 매일 기대하지만 매일 실망하기도 합니다. 아니, 물론 키타상한테가 아니라 잠자코 기다리지 못하는 저한테요.
센 척 똑똑한 척은 혼자 다 해도 사실 아직 아이같은 면이 있다.
- 언제 돌아올 거예요. 보고 싶어요….
간절기라고는 하지만 밤이 되면 쌀쌀하다. 꼭 이럴 때면 미리 구비해둬야 한다며 방한용품을 한가득 안겨주던 아츠무의 품이 생각났다.
- 매일이 지옥 같아요. 옆에 있는데 혼자 있는 것 같아요.
후회는 아무리 빨리 해도 늦다. 조금 더 빨리, 라고 생각하며 후회하기보다 1초라도 더 빨리 가서 그를 안아줘야 한다.
- 이 편지봉투 주면서 키타상이 그랬잖아요. 마음은 항상 제 곁에 있다고. 생긴 건 원고지나 쓸 것 같아가지고는 이런 귀여운 편지봉투 주면서 그랬잖아요.
차키가 어디 있었지. 침착해야 한다. 조급해졌다고 그냥 달려가면 또 걱정하게 할 것이다.
- 근데…, 지금은 아닌 것 같아요. 저한테 줬던 마음 다시 가져가신 것 같아요.
서둘러 나와서야 할머니 생각이 났다. 평소라면 다시 들어가서 확인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다. 아마 잠귀가 밝으시니 깨셨을 것도 같다.
- 기억해내요. 키타상이 저한테 줬던 마음. 제가 드린 마음. 전부 기억해내요.
“신쨩, 배달하러 가나?”
- 가을이 왔어요. 따뜻하게 입고 와요.
지금, 내 마음을 배달하러 간다.
- 사랑해요.